오랜 옛날 우리 조상의 주거 형태는 나무나 풀을 이용한 움집이나 동굴에서 생활을 했다. 점차 지혜가 발달하게 되어 목조 건물을 짓게 되었고 따라서 내구성이 높은 건축물도 짓게 되었다. 이에 목조 건물에 사용될 지붕을 이을 부재로 기와를 생각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식물성 부재인 갈대 혹은 짚은, 화재에 약할뿐더러 방수에도 문제가 있어 드디어 반영구적인 부재로써 기와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기와는 지붕의 빗물을 막아줄 뿐더러 외벽을 유지, 보존할 수 있는 내구성과 방화성에서 무엇보다도 훌륭하게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효용적 측면을 떠나 미학적 견지에서도 기와집은 우리 민족의 멋과 의식을 대변하는 정취적 산물이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기와집’이라는 개념을 부와 권위의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왕궁이나 관청 사찰 등에서 기와지붕을 얹어 축조 했고, 따라서 품계가 놓은 벼슬아치들이 살던 집이 기와집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기와를 춘추 전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마니 사금 11년 조'에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꺾이고 기왓장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궁궐이나 큰 건물에 기와를 덮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서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 법륭사를 지을 때, 백제에서 기와 박사 네 사람이 일본에 건너와서 기와를 구어 주었다고 하므로 7세기경에는 기와를 굽는 기술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듯하다.


기와는 지붕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진흙으로 빚어 900도 이상 고온에서 구운 일종의 도기 재료인 한식기와 와 근대에 들어 만들어지기 시작한 같은 모양의 동기와가 있고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은 몰탈을 틀에 넣어 찍어내고 햇빛에 말리고 굳혀서 사용하는 값싼 양식기와가 있다.


한식기와는 암기와 와 숫기와의 쌍으로 이루어진다. 암기와는 옆으로 넓게 퍼진 1/4 원통형, 숫기와는 오목한 1/2 원통형에 가깝다. 암기와를 아래부터 위쪽으로 차례대로 포개어 올리고 숫기와는 이미 쌓아 놓은 암기와 와 암기와 사이의 연결부위 틈을 차례대로 덮어주어 비나 눈 등이 녹아 새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동기와의 구조와 모양은 한식기와 똑 같다. 다만 지붕에 고정시킬 때 그 방법이 한식기와는 달리 하나하나 스크류 피스로 고정 시켜준다는 것이다.그렇지만 양식기와는 한식기와 비교해 볼 때 그 모양이 조금 다르다. 한식기와는 암기와, 숫기와로 나뉘어져 있지만 양식기와는 한 장의 기와가 그 두 기능을 함께 하도록 만들어 졌다.

 

초가집은 오랜 옛날에는 억새나 갈대와 같은 식물들을 야산에서 구해 지붕을 덮었을 것이다. 그후 농경사회로 전환되며 논농사가 성행하면서 볏짚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고, 야생에서 구하기 힘든 ‘새(억새)'보다는 ‘볏짚'을 지붕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 해에 한 번씩 덧씌워 주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요즈음 농촌의 대부분 초가집들은 그것을 걷어낸 뒤 양철지붕을 씌우거나 슬레이트로 교체해 사용 하고 있어 초가집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짚으로 지붕을 잇는 방법에는, 비늘 이엉법과 사슬 이엉법의 두 가지가 있다. 비늘 이엉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 의 수냉이를 한 뼌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 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은 사슬 이엉보다 오래 간다.


사슬 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 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간다. 사슬 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 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에서는 주로 비늘 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 이엉으로 덮는다.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빗물이 잘 흘러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한다.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 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충청도에서는 가로로 길게 매는 것을 '장매', 세로로 짧게 매는 것을 '가르매' 라고 하며 서까래 끝이 썩지 않도 록 이엉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지스레미'라고 한다. 초가지붕은 대체로 모임지붕의 형태를 이루나 겹집인 경우 이른바 까치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욱여넣어서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어 두는 일이 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 햇볕이 들어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멍은 초가집뿐만 아니라 너와집이나 굴피집 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기와집에는 양 합각에 작은 구멍을 내거나 창을 달며 구멍에 덮개를 장치하고 집안에서 여닫기도 한다. 전남의 장흥, 강진, 보성 등지의 초가지붕 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지기라는 것이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초가지붕의 용마루에 굵은 통대나무나 통나무를 가로 지르고 이 위에 용구새를 덮는데, 나무와 나무 의 이음새나 좌우 양측에, 볏짚 한 단 가량을 단단히 묶어 매고 수냉이쪽 을 낫으로 잘라서 가즈런히 한 다음, 이것을 거꾸로 용마루에 잡아매어 서 마치 상투를 틀어 올린 모양을 이룬다. 유지기는 한 지붕에 하나만 세우기도 하나 두 세 개를 올린 집도 있다.

 

너와집은 볏짚을 구하기 어려운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나타난 형태의 집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땔감으로 참나무 장작을 만들어 많이 쌓아 두었는데 그중 굵고 옹이가 없는 참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자른 뒤 도끼로 쪼개서 판재를 만들어 지붕을 덮은 것이 너와이다.


간혹 소나무로 만들어 지기도 하며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가로 20~30㎝ , 세로 40~60㎝, 두께는 5㎝ 내외이다. 수명은 보통 20년 정도로 초가에 비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너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어 둔다.

너와 와 굴피 등을 지붕에 올려 마감 처리한 집들은 대부분 귀틀집처

럼 나무를 가로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하중을 받도록 만들어진 구조에서 나타났다

 

굴피란 참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의 껍질을 말하는데, 산간 지대에서는 이것을 벗겨 지붕을 덮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 굵은 나무의 껍질이지만 일정한 크기로 벗겨 낼 수는 없으므로 굴피집의 지붕은 마치 누더기를 걸친 것처럼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나무껍질을 이어 만든 지붕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일대를 비롯한 산간지방 화전민들의 귀틀집 가옥에 널리 쓰였다. 굴피의 겉모양은 거칠어 보이나 매우 가벼우며 지붕 재료로는 20년 이상 자란 나무를 쓴다.


보통 2겹으로 끝부분이 겹쳐지도록 비늘 모양으로 이어가는데, 지붕 처마 쪽부터 위쪽으로 잇는다. 이음이 끝나면 지붕이 비와 바람에 파

손되지 않도록 ‘너시래’라는 길쭉한 나무 장대를 여러 개 걸쳐놓고 지붕 끝에 묶거나 돌을 올려놓아 고정시킨다. 비가 오거나 습할 때는 부피가 늘어나 비나 습기를 막아주지만 겨울에는 건조하여 수축하므로 틈새가 생겨 난방에 어려움이 있다. 굴피의 수명은 긴 편이어서 너와 보다 3배 이상 오래 쓸 수 있다. 굴피집도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가로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집의 하중을 받로록 만들어진 산간 지방의 귀틀집 구조에서 주로 나타났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중요민속자료 제223호로 지정된 굴피집이 보존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문화가 전수된 일본에서도 나무껍질을 여러 켜로 이어 만든 지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규슈[九州]의 광륭사(廣隆寺) 법당과 나라[奈良]의 가스가신사[春日神社]에 전시되어 있는 예 등이 대표적이다

 

청석[靑石]집 이라고도 하며 얇은 조각으로 쪼개지는 납작한 점판암(粘板岩)으로 지붕을 얹은 처리 방식의 가옥이다. 기와나 너와 대신 점판암으로 지붕을 얹는 까닭에 강원도에서는 돌기와집 또는 돌능에집, 돌느에집, 돌너와집 등으로 부른다.


석탄이 많이 나는 강원도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북부, 북한의 개성 일대, 충청북도 일부 지역에서 주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납작한 점판암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기와 대신 지붕에 얹는데, 진흙을 이겨 얇게 편 다음 위아래로 암키와를 걸치고 좌우의 이음매에 수키와를 덮어 미끄러짐을 막는 기와집과 달리 청석은 잘 미끄러지는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청석을 얹을 때는 물매(지붕이나 비탈길 등의 기울어진 정

도)를 아주 완만하게 처리한다. 청석을 얹는 방식은 기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아래쪽에 청석을 얹고, 그 위에 아주 비스듬하게 다른 청석을 포개 얹는 식으로 계속 쌓아 올라간다.


'천 년 능에'로 부를 만큼 한번 얹으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이다. 점판암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재료 구입과 운반 등의 어려움으로 일부 계층에서만 청석으로 지붕을 올렸다.


돌기와의 색은 보통 암회색이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기와지붕과도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얇고 불규칙하게 놓여진 모습이 정겹게 보이기도 한다.

 

담집은 집의 하중을 받는 벽체를 말 그대로 두꺼운 담을 쌓아서 그 위에 지붕을 얹은 구조의 집을 말한다. 이때 담을 무엇으로 쌓았느냐에 따라 흙담집 또는 돌담집이라 부른다.

흙담은 거푸집을 설치하고 그 속에 진흙을 다져 넣어 굳힌 다음 담을 만들며, 돌담은 적당한 크기의 돌들을 쌓고 그 사이를 흙으로 메워 가면서 벽을 만든 구조 인데 주로 제주도 같은 섬지방에 서 볼 수 있다.


1973년 8월 31일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된 안동 사월동 초가토담집은 안동 지방의 농가로서 기둥을 세우지 않고 판축 방식으로 다진 토담이 주 구조체가 되고, 목재는 도리, 서까래, 문틀 등에만 사용되었다. 원래는 앞으로 튀어나온 외양간이 정지 옆으로 이어져서 ‘一’자 집을 이루고 있었다. 외양간,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사랑방)의 순서에 따라 ‘一’자 집을 이루는 방식은 안동 지방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정면 칸수는 6칸이고, 목조 기둥과 하방, 중방 등의 목부 골조가 생략된 대신 두꺼운 토담벽으로 대체, 유지되고 있다.

토담은 판축 방식으로 다져 있고, 두께가 30㎝ 정도로 두꺼운 편이라 보온 효과가 매우 좋다.


19세기 후반에 건축된 이와 같은 초가 토담집은 한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초보적인 건축양식의 영세주택이다. 두꺼운 초가지붕과 토담벽은 한서(寒暑)의 변화를 효율적으로 방지하는 기능이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생활공간을 조성해주는 장점이 있다

토담집의 형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된 중국 푸젠성의 투러우 토담집이 있다. 투러우는 황허(黃河) 유역 중원에 살던 한족이 880년경 전쟁과 기근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하며 집단생활을 하는 도중 형성된 역사의 산물이다. 투러우는 보통 2~4층 짜리 집으로 토담 안에 공동생활에 필요한 화장실, 부엌 같은 생활공간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귀틀집이란 서양식 통나무집 과 유사한 형태의 집으로 굵고 긴 통나무를 가로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집의 하중을 받는 벽체를 만드는 방식의 집을 말하며 방틀집, 목채집, 틀목집, 말집, 투방집 등으로 부른다.

지름 15 cm 되는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삼은 집으로 산간 지방에서 유치한 도구로 목재를 사용해서 집을 쉽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생긴 건축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개마고원, 낭림산맥 양사면 및 태백산맥 등지에 많이 있다.


귀틀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나무를 옆으로 쌓아올려 집을 짓는데 모양은 감옥을 닮았다”고 하였다. 서양에서는 약 3000년 전 목재를 수직

으로 세우지 않고 수평으로 쌓아 벽체을 구성한 통나무집이 이 있었다. 이는 줄기가 곧은 큰 원목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던 유럽, 미국의 북부, 중부와 산간지역에서 건축되었고 흑해에 인접한 소수 아시아인도 통나무집을 지었다. 그 후 북유럽에서는 둥근 통나무의 3면 혹은 4면을 깎아낸 큰 각재를 통나무집 건축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것이 둥근 통나무보다 밀착이 더 잘되어 단열 효과가 우수했기 때문이다.


귀틀집은 나무와 나무 사이가 겹쳐지는 부분을 네 귀가 잘 들어맞도록 도끼로 쪼아내 그 위에 얹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했고 나무 사이는 진흙을 발라 메꾸어서 바람이 들지 않게 했다. 천장에는 한쪽을 판판하게 깎은 나무 7~8개를 나란히 걸고 널쪽을 촘촘하게 깐 다음 역시 진흙으로 덮는다. 벽체가 완성되면 그 위에 누리개를 올려놓고 누리게 위에 산자를 깔고 흙을 발라 천장을 만든 뒤 그 위에 지붕틀을 덧씌운다. 따라서 귀틀집의 지붕은 맞배지붕처럼 만들어지며 기둥이라고는 천장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작은 기둥 한 줄 뿐이다. 나무가 풍부한 강원 산간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지붕 재료로는 너와나 굴피를 많이 사용한다.


한국의 귀틀집은 두 개의 방만 귀틀로 짜고 정지나 외양 등의 부속 공간은 널벽으로 마감한다. 귀가 크면서도 곧은 나무가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는 울릉도 나리분지에 문화재로 지정된 몇 채가 남아 있다. 귀틀집과 같은 형태의 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리고 미국의 산악 지방과 캐나다 일대에 로그 하우스(통나무 집)라는 이름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나무기둥집은 우리의 전통 고건축 집들을 모두 일컫는 것으로 다음 창인 한옥의 특징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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